그 한 마디를 못한다 김철현 한 마디면 되는 것을 그 한마디를 못하고 산다. "미안하다". 마음에 담아 두고 병들어 하면서도 그 한 마디를 못하고 산다 "보고 싶다". 숱한 말들을 쏟아내며 살지만 정작 그 한마디를 못하고 산다. "사랑한다".
누군가 행복할 수 있다면 용혜원 나로 인해 누군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내가 해준 말 한마디 때문에… 내가 준 작은 선물 때문에… 내가 베푼 작은 친절 때문에… 내가 감사한 작은 일들 때문에… 누군가 행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갈 의미가 있습니다. 나의 작은 미소 때문에… 내가 나눈 작은 봉사 때문에… 내가 나눈 작은 사랑 때문에… 내가 함께 해준 작은 일들 때문에… 누군가 기뻐할 수 있다면 내일을 소망하며 살아갈 가치가 있습니다.
햇살의 말씀 공광규 세상에 사람과 집이 하도 많아서 하느님께서 모두 들르시기가 어려운지라 특별히 추운 겨울에는 거실 깊숙이 햇살을 넣어주시는데 베란다 화초를 반짝반짝 만지시고 난초 입에 앉아 휘청 몸무게를 재어보시고 기어가는 쌀벌레 옆구리를 간지럼 태워 데굴데굴 구르게 하시고 의자에 걸터앉아 책상도 환하게 만지시고 컴퓨터와 펼친 책을 자상하게 훑어보시고는 연필을 쥐고 백지에 사각사각 무슨 말씀을 써보라고 하시는지라 나는 그것이 궁금하여 귀를 세우고 거실 바닥에 누웠는데 햇살도 함께 누워서 볼과 코와 이마를 만져주시는지라 아! 따뜻한 햇살의 체온 때문에 나는 거실에 누운 까닭을 잊고 한참이나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햇살이 쓰시려고 했던 말씀이 생각나는지라 “광규야, 따뜻한 사람이 되거라”
진실 큰 사람이 되고자 까치발 서지 않았지 키 큰 나무숲을 걷다 보니 내 키가 커졌지 행복을 찾아서 길을 걷지 않았지 옳은 길을 걷다 보니 행복이 깃들었지 사랑을 구하려고 두리번거리지 않았지 사랑으로 살다 보니 사랑이 찾아왔지 좋은 시를 쓰려고 고뇌하지 않았지 시대를 고뇌하다 보니 시가 울려왔지 가슴 뛰는 삶을 찾아 헤매지 않았지 가슴 아픈 이들과 함께하니 가슴이 떨려왔지.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중에서
아들에게 아들아 너와 나 사이에는 신(神)이 한 분 살고 계시나 보다. 왜 나는 너를 부를 때마다 이토록 간절해지는 것이며 네 뒷모습에 대고 언제나 기도를 하는 것일까? 네가 어렸을 땐 우리 사이에 다만 아주 조그맣고 어리신 신이 계셔서 사랑 한 알에도 우주가 녹아들곤 했는데 이젠 쳐다보기만 해도 훌쩍 큰 키의 젊은 사랑아 너와 나 사이에는 무슨 신이 한 분 살고 계셔서 이렇게 긴 강물이 끝도 없이 흐를까? 문정희 시 에세이 <살아있다는 것은, 생각속의집 2014>
그러려니 하세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지만 삶의 대지에선 그런 것만이 아니지요 콩밭에는 잡초가 나고 벼논에는 피가 돋고 밀밭에는 가라지가 나지요 사랑 때문에 상처받고 이웃 때문에 속상해도 그러려니 하세요 잡초가 나고 가라지가 나도 콩이 자기를 잃어버리나요 밀이 자기를 포기하는가요 그러려니 하세요 시달리면서도 나를 잃지만 마세요 부대끼면서도 한번 웃어 버리세요 웃는 놈이 이깁니다 질긴 놈이 이깁니다 잡초와 가라지는 선과 정의의 도약대이니까요 박노해 시인 <숨 고르기>중에서
하루하루 사랑으로 사는 일 안만식 순간을 사는 일이 하루를 만들고 하루를 사는 일이 한 생을 이룹니다. 하루를 사는 일을 마지막처럼 정성을 다하고 하루를 사는 일을 평생을 사는 일처럼 길게 멀리 볼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젊은 날의 시간을 의미 없이 낭비하고는 뒤늦게 지난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르게 한 번 살아볼텐데 하며 후회하고 아쉬워합니다.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살아볼 수 없는 시간 순간의 시간을 뜨겁게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루를 사랑으로 사는 일이란 너그러워지고 칭찬하고 겸손하고 진지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루를 사랑으로 끝내는 일은 반성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을 뜻합니다.
힘들었지 임윤주 너무 슬퍼 말아라 인생은 달다가도 쌉싸름한 거란다 좌절(挫折)하지도 말아라 지금까지 잘해온 거야 정답(正答)이 없는 인생이잖아 지금은 쉼이 필요한 거라 생각하자 지쳤으니까 잠시 쉬는 거라 생각하자 넌 누구보다도 현명(賢明)하고 지혜(智慧)로운 사람이란다 열심(熱心)히 잘 해왔잖아 울고 싶을 땐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실컷 울어버리는 거야 그래도 괜찮아 속으로 꾹꾹 담아 놓지 말고 담아 놓은 거 다 쏟아내어버려 다친 마음 훌훌 털어버리고 제자리로 돌아오면 되는 거야 모든 것은 지나가는 바람 일뿐이야 스치듯 스며들다가 말없이 훌쩍 지나가버린단다 오늘의 태양(太陽)은 내일 또다시 찬란(燦爛)하게 널 비춰줄 거야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집으로 가는 길 풍랑 일렁이는잿빛 도시의 바다에고독한 섬처럼행인 불쑥 마주치면그 섬들 에돌아집으로 가야 하네빌딩 숲 사이로헤집고 얼굴 내미는기죽은 석양 맞으며남루한 그림자가슴 시리게 매달고집으로 가야 하네숯덩이가 되도록밖으로 내몰리다수척해진 가장의 몸낯선 곳에 둘 수 없어무거운 발길 재촉해집으로 가야 하네단 하루를 살다장렬하게 세상 떠나는하루살이처럼완전히 탈진하여이불 속이 더욱 간절한집으로 가야 하네가자!가자!비록 바람이라도하늘로 비상할 수 있는풍선 여러 개 사 들고 집으로 가자! 공석진 詩 <'집으로 가는 길'>…
부러운 것 하나 없습니다 강희복 누룽지 한 그릇에 마른 멸치 고추장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습니다 값비싼 옷은 아니지만 철따라 가릴 수 있는 옷을 입습니다 비행기는 못 타도 비행기 지나가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세월이 익은 와인은 없어도 친구 같은 막걸리가 곁에 있습니다 푹신한 소파에 넓은 거실은 없어도 문 닫으면 아늑한 방에 아내와 있습니다 부러운 것 하나 없습니다. # '2019 서울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 시'에 선정되었습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들은 아름답습니다 도종환 저녁 햇살 등에 지고 반짝이는 억새풀은 가을 들판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습니다. 차가워지는 바람에 꽃손을 비비며 옹기종기 모여 떠는 들국화나 구절초는 고갯길 언덕 아래에 있을 때 더욱 청초합니다. 골목길의 가로등, 갈림길의 이정표처럼 있어야 할 자리에 있으면서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은 보기에 얼마나 좋습니까. 젊은 날의 어둡고 긴 방황도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기 위한 길이었는지 모릅니다.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기나긴 그리움의 나날도 있어야 할 사람과 함께 있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겁니다. 머물 수 없는 마음, 끝없이 다시 시작하고픈 갈증도 내가 지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바람만 불어도 흔들리고 산그늘이 들판을 걸어 내려오는 저녁이면 또다시 막막해져 오는 우리들의 가슴은 아직도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다는 생각 때문일지 모릅니다. 잎이 지는 저녁입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들은 아름답습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서 더욱 빛나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외로움 이 승 규 혼자라 외로워 말아라 삶은 결국 외로움을 견디며 자기를 온전(溫全) 히 알아가는 일이다. 나를 이해(理解) 하고 사랑하게 되는 인생의 모든 과정(過程)이다. 스스로를 사랑하게 됨으로써 타인(他人)과 자신(自身)을 똑같이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과정(過程)이다. 혼자라 외로워 말아라 삶은 결국 외로움을 알아가며 사람을 온전(溫全) 히 알아가는 일이다. 남을 이해(理解) 하고 타인(他人)을 자신(自身)처럼 사랑하게 되는 인생의 모든 과정(過程)이다.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가며 그 안에서 행복을 발견(發見) 하는 과정이다. 이승규 시집<바보 시인>중에서…